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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소바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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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코소보 공화국에 대한 내용은 코소보 문서참고하십시오.
1. 개요[편집]
코소바 공화국(코소보 제1공화국)은 1991년부터 1999년까지 현 코소보 지역에 위치했던 준국가로 오직 알바니아만 인정하던 주체였다. 전성기에는 코소보 지역 상당수를 점령하며 세르비아의 코소보 및 메토히야에 대비되는 정부기관을 수립해 운영하기도 하였으나 세르비아를 코소보에서 완전히 몰아내는 것은 NATO의 개입을 동반한 것이었기에 코소보 전쟁의 평화 협상에 따라 코소바 공화국은 해체되고 유엔 하 과도기를 거친 후에 현재의 코소보 공화국이 수립된다.
2. 역사[편집]
1990년 6월, 코소보 지역의 의원들은 유고슬라비아 내 독립 코소보 공화국을 위한 표결을 시도하나 코소보 자치주의 세르비아인 수반은 이러한 시도를 거부하고 이 표결을 7월로 유예한다. 따라서 7월 2일 코소보의 의원들이 독립 표결을 위해 모이지만 의회 건물은 잠겨있었고 따라서 코소보 의원들은 의사당 밖 거리에서 유고슬라비아의 "코소보 공화국" 수립을 결의한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세르비아 사회주의 공화국은 코소보 자치정부와 의회를 해산시킨다.
해산된 코소보 자치정부의 알바니아계 의원들은 비밀리에 1991년 9월 7일에 코소보 남부 도시 카차니크에서 "코소바 공화국" 수립을 선언했고 유고슬라비아의 법은 코소바 공화국 법령과 대치되지 않을 경우에만 유효하다 정의하였으며 이후 9월 22일에 코소바 공화국을 독립국으로 선언한다.
이후 9월 26일과 30일에 걸쳐 독립에 대한 비공식 국민투표가 처리되어 약 105만명의 유권자가 참여하고 독립에 99.98%의 투표자가 찬성한다. 이는 유권자의 87%가 참여한 선거였고 유권자 66.7% 참여 및 50% 이상 찬성을 요구하는 코소보 자치정부법상 합헌이었다. 하지만 인구의 10% 가량을 점유하는 세르비아계는 이 국민투표를 보이콧하였으며 유엔 회원국 중 코소바 공화국을 국가로 인정한 것은 알바니아밖에 없었다.
이후 코소바 정부는 교육 시스템, 의료보험, 세금제도 등 정부 기관으로서 구색을 갖추기 시작하고 선거를 통해 이브라힘 루고바(Ibrahim Rugova)를 대통령으로 선출한다. 하지만 세르비아 정부의 진압으로 코소바 공화국 정부는 코소보 지역의 일부만 통치하였고 정부도 이웃 알바니아로 망명하는 등 주장하는 영토를 통치하는 국가로서는 영 모습이 모호했다. 더군더나 코소보의 사실상 군대였던 코소보 해방군은 세계 대다수에 의해 독립군이 아닌 도적 내지 범죄조직으로 취급받고 있었던지라...[2]
이후 코소보의 분쟁이 코소보 전쟁으로 확전되어 나토의 개입을 통해 코소보가 세르비아로부터 분리되어 UN의 관리를 받게 되자 코소바 공화국은 해체되고 코소바 공화국 정부의 주요 인물들은 유엔 관리 하 코소보로 들어가게 된다.
3. 관련 문서[편집]
[1] 알바니아의 국기의 쌍두독수리가 왼쪽으로 치우쳐져있다.(다만 국기의 비율이 다르다.)[2] 코소보 해방군의 주 자금출처는 마약 밀매와 부유층의 후원으로 이뤄졌다. 미 국무부가 이 조직을 도적으로 분류한 것에도 뒷받침할 근거가 있는 것.